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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 이석원 본문

감상/책

보통의 존재 - 이석원

CRAD 2016. 10. 25. 01:48


보통의 존재 -이석원


1.

 간만에 책 한 권을 읽었다. 단색의 노란 표지와 명조체의 폰트. 그리고 어디선과 많이 본 제목과 저자의 이름.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이 쓴 보통의 존재이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그의 글 모음에는 그가 삶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 쓰여져있다. 담담하게. 

 담담. 얌전한 말이다. 발음을 할 때, 한 글자가 끝나고 차분하게 다음 글자가 와야만이 온전하게 발음이 된다. 받침이 있는 단어들이 대부분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하나의 글자가 두 번 반복되면서 살짝 성대를 울림과 동시에 입술이 다물어진다. 하지만 뜻은 그렇게 얌전하지만은 않다.


2.

 사전적 의미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담담하다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좀 더 입체적이다. 나는 담담하다는 말에서 몇 년간의 자취 생활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짐을 쌀 때. 그 때의 감정이 떠오른다. 어떤 일이 지나간 후에, 미련과 후회를 넘어 기억을 반추하며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 그 것이 자연스레 되지는 않는다. 수많은 추억과 감정의 폭풍을 모두 겪어내야 결국에 담담하다는 말이, 그 느낌이 온다.

 얌전하지 않다는 나의 주장은 여기에 그 근거가 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렀을 때에는 결코 담담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담담하다는 말에는 우여곡절이 숨어있다. 그 우여곡절이 개인의 것이든, 그 보다 더 큰 단위의 것이든 말이다.


3. 

 그런 의미에서 보통의 존재는 담담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그의 글에는 흥분이나 감정의 과잉을 느낄 수 없다. 어제 일어난 일을 쓸 때도 자신에게서 한 발짝 떨어진 사람의 시선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 안에는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견딜 수 없이 힘들었던 일들이 있다. 그냥 그렇게 있다.


4.

 우리는 모두 보통의 존재이다. 이석원 씨의 경험은 사실 모두가 겪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였고, 이혼을 하였다. 위장 장애가 있어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해 화가 난다. 그가 역시 "담담하게" 밝히듯이 식구 3명이 자살시도 경험이 있고, 4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을 모아놓으니 어디선가 봤음직한 아저씨가 된다. 보통의 존재가 된다.


5.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노래가 있다. 언니네 이발관 5집의 곡이다. 한 사람이 사랑에 빠져 영원을 약속하지만 결국은 헤어지게 된다는 흔한 사랑 노래다. 흔해서 가치가 있다. 이런 사랑이야 말로 가장 보통의 존재들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의 책에서도 그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천착한다. 과거에 그를 거쳐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생각하며 그는 글을 쓴다. 그 역시 가장 보통의 사랑을 겪어온 것이라고, 그 스스로를 위로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의식은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위로를 준다.



6.

 그의 길지 않은 산문집은 대체로 다 마음에 들었지만 그 중에도 특히 좋았던 구절을 적는다. 


"아무리 그래도 음식이란 기본적으로 나쁜 놈들이다. 왜나하면 맛있는 건 전부 다 몸에 안 좋으니까"<오, 나의 음식들아>


"말이 안 통하는 상대와 대화를 하는 법. 없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나 홀로 있다가, 아무도 없는 세상에 둘만 있게 되는 게 연애"<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