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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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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잡담

학자라는 타이틀

CRAD 2017. 12. 20. 19:17

 학자라고 함은 모든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를 뜻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있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의 전문적인 지식이 다른 분야에 있어서의 신뢰성을 확보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자라는 타이틀은 때때로 이 사실을 자꾸 잊게 만든다. 예를 들어, 어떤 생물학 교수가 성평등에 관한 문제나 정치적인 평론을 할 때에 그 사람이 이 분야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평범한 사람보다도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통은 000학 교수에서 000학을 제외한 채 교수라는 이름에서 오는 권위만을 가지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교수가 자신의 권위에 취해버릴 때다. 다른 사람은 오해를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스스로는 자신이 자신의 분야가 아닌 분야에 있어서 비전문가임을 항상 견지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교수나 전문가라는 타이틀에서 오는 권위로 인하여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어 나르는 언론이나 여론에 의해서 자신이 그 분야에도 전문가가 된 마냥 취해버린다. 거짓말의 가장 심각한 단계이며 일종의 리플리 증후군이다. 특히 이런 사람들의 이러한 문제점은 정치 평론을 할 때 쉽게 드러난다. 정치라는 것이 술자리에서도 취한 사람들끼리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기에 수십 년간 갈고 닦은 온갖 미사여구로 무장한 어중이 떠중이들도 자신이 전문가를 자처하고 나서서 소위 정치평론이라는 것을 한다. 문제는 이 같은 내용을 권위를 가진 사람이 미디어를 통하여 전달을 한다면 파급력이 생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반문할 지 모른다. 자신은 자연인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냐고. 그러나 그 말이 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글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최대한 내려놓아야 한다. 그 권위가 자신이 그동안 펼쳐온 글, 방송, 강의 등으로 이름에 쌓여있다면 그 이름을 걸고 쓰는 글에는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그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글을 쓰는 목적에 있어서 논리 전개가 최소 납득, 최대 설득이 되도록 써야한다는 것이다. 권위라는 치트키를 제외하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글의 내용이 전혀 설득도 납득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유명세, 즉 권위라면 그 글은 쓰레기와 다름이 없다. 

 덴마라는 웹툰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전문가의 말이라 신뢰할 수가 없어." 우리는 쉽게 권위에 기대며 신뢰를 확보하고자 한다. 하지만 편함의 대가로 우리는 얼마나 많이 통수를 맞아 왔던가. 

웹툰 '덴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