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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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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책

[강스포]빛 혹은 그림자

CRAD 2017. 12. 19. 19:48

 페이스북 계정만 있고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다. 핸드폰에 앱도 지워놨다. 그러다가 가끔 한 번 PC로 로그인을 한다. 그러다 이 책의 광고를 봤다. 공모전을 가장한 광고였고, 그 낚시바늘에 내 볼이 제대로 꿰였다. 호퍼라는 화가의 그림을 주제로 하여 유명 작가들이 단편을 하나씩 내놓은 것을 묶은 책이라는 설명과 함께, 한 작가가 완성하지 못한 그림-케이프 코드의 아침-을 독자 여러분이 완성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잊고 있다가 서점에 갔을 때, 운이 좋게 생각나 이 책을 구입했다. 마케팅의 힘이란.

 

 얼마 전에 들은 책-오디오 북 소라소리-중에 움파 라히리의 일시적 문제라는 단편이 있다. 그 책을 들을 때 내 머리 속의 심상은 어두운 와중에 촛불이 켜진 식탁에 마주앉은 두 남녀의 모습이었다. 기억력이 안 좋기에 내가 접한 대부분의 책이나 영화는 기록을 남겨놓지 않은 이상, 대부분 휘발되어 버리지만 그 단편만은 내게 뚜렷한 그림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래서 더욱이 이 책이 마음에 들어앉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들이 한 화가를 기리는 가장 정중한 방법으로 보이기도 했다. 제임스 블록이라는 작가가 주도하였다.

 

 여백이 많으니 책이 크고, 종이가 두꺼우니 무겁고, 그러니 당연히 책이 비싸다. 나는 문고본 책이 좋다. 아니면 요새 점점 서점에 깔리고 있는 미니북이 좋다. 손 안에 쏙! 멀미가 있는 편이라 대중교통 이용 중에는 못 읽지만, 들고 다니기 부담스럽게 크고 무겁다. 화가의 그림이 필수적으로 컬러로 들어가 있어야 하기에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종이 질이 너무 좋다. 그래도 확실히 그림이 잘 들어가 있으니 그 점은 좋다. 다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문제라 단언은 못하겠지만 그림에 따라 가로 세로를 다르게 하여 크게 넣어주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외적은 부분은 이 정도로 요약하고.

 

 책을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특히 다른 보통의 소설과는 다르게 각 작가들의 묘사를 그림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공모전에 참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래서 먼저 그림을 보고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먼저 하고 읽으면 더욱 작품을 즐기기 좋다. 물론 내가 그림을 보고 떠올린 내용은 소설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프로 작가는 프로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는 점도 있다. 같은 그림을 보고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끌어 낼 수 있는 능력들에 대해서 감탄을 하게 되기도 한다.

 

 17개의 이야기는 모두 일정한 수준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특히 맘에 드는 건 크레이그 퍼거슨의 직업인의 자세와 크리스 넬스콧의 정물화 1931, 그리고 로런스 블록의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이다. 먼저 직업인의 자세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발상이 재미있었다. 마을의 모두가 독실한 신자인 곳의 존경받는 목사가 무신론자라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무신론임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충실하게 목사 노릇을 한다는 내용에서 실소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세상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신념과 사상에 맞지 않는 혹은 정 반대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정물화 1931은 북부에서 남부로 파견된 인종파별주의 철폐를 위해 노력하는 한 노부인의 이야기이다. 대공황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미국. 그 곳에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망하지 않은 은행에서 예금한 돈을 인출하는 여행을 하고 있는 이 노부인은 사실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한다. 아니 했었다. 아니 했다고 믿었다. 그녀가 하는 일은 남부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의 실태를 뉴욕의 한 인권단체에 보내는 것이었다. 그 활동을 하다가 만난 남부의 한 백인과 결혼을 하지만 남편이 죽은 이후에 이런 여행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한 일이 사실 세상을 위한 일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의 언니는 어릴 적 착한 남자로 기억되는 한 흑인을 자신을 강간한 사람으로 몰아 끔찍하게 살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죄책감으로 자살을 한다. 그러면서 언니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고, 그녀는 그 기억을 흑인인권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인권 운동 도중에 아이러니 하게도 거짓 없이는 할 수 없는 활동-남부 파견-을 하게 되고, 심지어는 그녀의 남편에게도 단 한 번도 진실을 고백할 수 없었다. 그녀의 남편 역시 그 당시 평범한 남부 백인 남자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 했으므로.

 그녀는 뱅크 오브 엠파이어 스테이트로 가기 위해 뉴욕에 왔고, 그녀가 계속해서 제보를 했지만 한 번도 들려보지 못한 곳에 들려보기로 한다. 그 곳에서 그녀는 익명으로 그녀의 언니에게 100달러를 헌정하고 돌아서지만, 그 곳에서 들려오는 앨라배마 사건의 내용을 들으며 진정으로 흑인 인권 운동에 헌신해보기로 결심한다.

 난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좋더라.

 

 마지막은 이 책을 기획한 로런스 블록의 자동식당판매기의 가을이다. 독일에서 온 사기꾼과 평생 살아온 할머니가 그 사기꾼이 사라진 다음-죽었을 가능성이 크다-사기를 쳐서 성공하는 내용이다. 있을 법한 일이라 더욱 몰입이 된다고 할까.

 자동판매기 가게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크누델마우스-달콤한 생쥐라는 뜻의 독일 애칭이란다. 쥐가 귀엽게 생기긴 했다. 난 그 말에 동의한다-는 재정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그러다가 꾀를 내어 수저를 훔친다. 그러나 그 것을 관리인에게 걸린다. 그리고 관리인은 경찰관을 부른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보니 왠 걸, 그 할머니가 직접 가져온 수저였다. 그래서 관리인은 그 할머니에게 500달러를 물어준다. 하지만 쟌넨~, 그것은 이중트랩이였습니다. 수저를 훔친 다음에 안 보이게 놓고, 그 수저를 보여준 것이었다.

 그 외에도 스티븐 킹의 단편이 있는데 이건 좀 실망이었다. 그림에서 뽑아낸 주제와 풀어가는 방향은 좋았는데 너무 짧았다. 더욱 많은 내용이 담겨 있을 것 같은데 시간 상 종료한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할까. 기말고사 때 서술형 시험에서 시간이 없어 결론을 대충 낸 시험지를 읽은 느낌이다. 그 점이 아쉬웠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찾을 때, 종종 인디씬에서 나오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듣곤 했다. 그 앨범을 듣다 보면 꼭 귀에 꽂히는 아티스트들이 1~2명은 발견됐다. 그러면 그 아티스트의 다른 음악을 찾아본다. 대부분은 성공적으로 내 귀에 꼭 맞다. 이 책도 일종의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볼 생각이다.

 

Ps. 결국 글은 시작도 하지 못해서 공모전은 응모하지 못했다. 난 게을러서 망할거다.